W. 명멸님
1. 빨간망토는 어떤 아이일까?
토코는 사실 그저 동화속에 나오는 평범한 빨간망토라 말할 수는 없다고 해요. 부모님에게 사랑을 가득 받고 자신을 아껴주는 단 하나뿐인 할머니를 위해 심부름을 하는 천진난만한 빨간망토가 아니라, 늑대를 사냥하기 위해 길러진 빨간망토라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어쩌면 토코가 사는 곳은 늑대들로 유명한 지역이거나, 늑대가 어떤 값어치를 하는 장소인 것으로 볼 수 있을 듯해요. 그러니 인간과 늑대가 거나한 대척점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에 어린 나이의 토코 또한 늑대를 소탕하고 이용하는 데에 뛰어들었던 거겠죠. 그러다보니 감성적이고 천진난만하기보다도 조금 메말라있고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는 면이 강합니다. 물론 천성적인 부분에서는 장난기도 많고 활달해요. 다만 어떤 감정을 우선시해야하는 상황에서는 본인의 목적이나 이성이 우선적으로 작용하며 여타 사람들보다도 날카로우며 본인이 원하는 바가 있다면 그걸 이루기 위해 어떻게든 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누군가 자신의 위에 군림하는 일도 그냥 내버려두지 못하는 편이에요. 자기 멋대로인 부분도 분명 있다는 거죠. 자신이 정립한 규칙과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막는 이가 있다면 쉬이 넘어가지 못할 겁니다. 기본적인 성향 자체는 매우 좋아요. 남들과 어울리는 것도 그리 어려워하지 않고요. 다만 이런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어린 나이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녹록지 않은 일이라는 점. 이런 점들을 모두 보았을 때 토코는 단순히 동화의 인물에 속한다는 것만으로 마무리할 수는 없는 인물임을 알 수 있겠습니다.
2. 늑대는 어떤 늑대일까?
키르아의 경우는 욕심도 많고 잘 하는 것도 많아요.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이 늑대 무리가 자신을 담기에는 그릇이 작다고 여기고 있을 수도 있고, 다른 의미로는 이 늑대 무리에서 자신이 바라는 바가 이룰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키르아는 이 무리를 떠나고 싶어하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 무리가 자신을 절대 그리 하도록 놓아주지 않는다는 것으로 볼 수 있고요. 그러니 본인이 이 집단을 떠나고 싶어하지만 그 욕심은 헛된 것이라 할 만큼 가능성이 매우 희박합니다. 게다가 늑대 무리가 인간에게 매우 적대적임에도 키르아는 꼭 그렇지만은 않아서, 이들과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일종의 죄악감이나 강요로 다가온다고 하죠. 늑대 무리들은 이런 키르아가 유약하다고 생각하여 강하게 밀어붙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키르아의 성정은 마냥 타인의 뜻에 굴종하고 수그리는 편이 아닌지라 이런 환경에서 살아가는 게 더더욱 답답하게 느껴진다고 하죠. 언제나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고, 자신만의 삶을 되찾고 싶어하는 키르아지만 주변 환경은 언제나 감옥처럼 느껴지듯 삼엄하고 자신을 두렵게 합니다. 때론 이런 오래된 갈망에 지쳐서 '정말 여기서 나갈 순 있을까?'하는 회의감을 가지기도 해요. 게다가 인간들과의 관계나 여러 면에서도 안전한 곳은 없다는 불안이 생기기도 하고요. 허나 이런 마음을 누르고 어떻게든 제 삶을 찾아보려고 애를 쓰는 중이라고 합니다.
3. 빨간망토가 늑대를 마주했을 때 심정은?
토코의 경우 키르아를 마주했을 때 진솔한 마음으로는 새로운 사냥감, 자신의 흥미를 채워줄 존재로 생각했을 거라고 합니다. 근데 또 특이한 건 평소에 하던대로 늑대라는 존재를 마주했을 때처럼 죽여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기는 게 아니라, 죽이는 것보다도 자신과 어울릴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는 점이 평소와는 다릅니다. 아니면 지금까지 자신이 잡은 늑대들은 전부 다 거대하고, 성체에 가까운 존재였는데 키르아의 경우는 어리기도 하고, 사뭇 다른 느낌이 들어 토코가 관심을 보였을 수도 있죠. 내지는 지금까지 본 늑대들은 전부 자신에게 위협적으로 대하거나 공격하는 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었는데 키르아의 경우는 마냥 인간이라고 해서 이빨을 드러내거나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편으로 토코에게도 그런 태도를 취해서 토코가 어라? 하고 신기하다 여겼을 가능성도 있어요. 그래서 키르아를 봤을 때 죽이고자 하는 마음보다도 신난다~ 하는 들뜸이 매우 컸다고 해요. 또는 인간의 무리에서 제 또래가 너무 없었던 탓에 늑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나이가 비슷해보이자 매우 신이 났을 가능성도 있죠. 그러니 키르아를 죽이기보다도 어떤 특별한 사이가 되고 싶다! 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평소에도 토코는 딱히 늑대를 죽이는 일에 일종의 증오심이나 죄책감 같은 부가적인 감정은 느끼지 않는 편인 것 같네요. 토코는 그저 어른들이 시켜서 하는 일일 뿐, 개인적으로 늑대에게 가지는 마음이나 감정은 없어요. 그러니 키르아를 보게 되었을 때도 죽이지 않는다는 것에 '이러면 안 되는데' 같은 마음은 가지지 않습니다. 그냥 자기가 좋으니까 된 거예요. 게다가 키르아를 알게 되었으니 이제 재밌게 놀아야지! 하는 마음을 가득 채운 채 그의 존재를 알아가고 싶어합니다.
4. 늑대가 빨간망토를 마주했을 때 심정은?
키르아의 경우도 인간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주입된 감정을 따르는 편은 아니지만, 일단 '낯선 존재'라는 것에 대한 거리낌은 가지고 있는 편이라서 토코를 보았을 때 마냥 달가워한다거나, 토코처럼 신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대신 '얘는 뭐지?' 하는 궁금증을 수반하고 접근하며 매우 객관적인 시선으로 토코를 평가하려 애쓴다고 합니다. 그리고 키르아가 가진 생각답게 토코를 '인간'이라는 존재로 보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토코는 물론 인간이지만, 늑대 무리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생각을 기반으로 토코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죠. 게다가 자신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오는 토코에게 더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하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사이가 되고 싶어하는 것도 아니에요. 아무리 인간이라는 생각을 떼어놓고 본다고 해도 자신에게 저리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오는 건 좀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제지시키려는 편인 거죠. 게다가 자신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한들 키르아가 늑대로 살아온 경험까지는 오롯이 무시할 순 없는 터라 더욱이 토코를 좀 멀리하려고 할 수밖에 없죠. 당황스럽지만 차분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현 키르아의 생각이자 노력입니다. 게다가 자신을 붙잡으며 잘 지내보자고 하는 토코를 보며 무슨 꿍꿍이일까, 의심하는 모습도 보이긴 해요. 무슨 늑대랑 인간이 친구를 한다고, 하는 마음이 찰나 들지만 이내 한편으로는 어쩌면, 하는 마음도 피어오릅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그 어떤 것에도 온전히 치우치지 않고 그저 토코 그 자체에 집중하려고 하며, 관계를 만들기보다도 이 상황을 어떻게 헤어나갈 것인가에 대해 생각한다고 해요. 또한 키르아 본인이 마음을 다잡지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토코, 타인에게 곁을 주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5. 늑대는 빨간망토를 잡아먹었을까?
키르아는 처음에 토코에게 마음을 주지 않겠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신도 모르는 새 마음을 줄 수밖에 없게 돼요. 일단 제 또래이기도 하고, 토코가 제게 자꾸만 다가오는 것을 마냥 밀어낼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은연 중에 키르아는 토코에게 기대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본인이 정말 토코에게 드러내놓고 힘들다는 내색을 하는 건 아니지만, 가족으로부터도 의지할 수가 없고, 자신이 원하는 바는 이루어지지 않는 답답함 속에서 그저 해맑게 자신을 찾아오는 토코를 보면 마음이 쏠리거나 그 순간만큼이라도 안락함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게다가 애초에 인간을 적대시하는 행위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키르아이기에 토코를 잡아먹는다는 일 자체가 이루어진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토코가 자신을 찾아오는 일을 일상으로 삼고 제 유일한 낙으로 삼게 된 키르아가 어찌 토코를 잡아먹을 수 있겠어요. 어느 순간부터 토코가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다면 키르아는 그나마 쉬고 있던 숨통을 전부 끊어낸 것 같은 괴로움을 느끼게 될 게 분명한데요. 이걸 키르아가 자각하고 있든, 자각하지 못하고 있든 토코를 잡아먹지 않는다는 사실은 동일합니다. 제 무리에서 지내며 유일한 위안을 받고 있는 존재가 토코인 만큼, 키르아 나름대로는 토코를 소중하게 대해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분명 있기 때문이라고 해요.
6. 빨간망토의 끝
열심히 키르아를 찾아가던 어느 날, 토코는 어른들에게 심부름을 받게 되죠. 언제나와 다름 없는 심부름이지만 이번 심부름은 좀 다릅니다. 다른 늑대도 아닌 키르아를 죽이고 오라는 거죠. 평소와 다름 없이 해내면 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토코는 이상하게 망설여집니다. 키르아가 늑대였다는 걸 몰랐던 것도 아니고, 그걸 알았다는 건 은연 중에라도 키르아 또한 자신의 심부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는 얘기인데 마치 키르아는 벗어날 수 있었던 것처럼 마음이 허해지게 됩니다. 이상하죠. 키르아도 죽이라는 심부름을 받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집에서 나서는 걸음부터 쉬이 떨어지지가 않습니다. 그 마음이 좀체 가라앉지가 않아서 토코는 뛰었다, 걸었다를 반복하며 키르아가 기다리고 있을 곳으로 향하죠. 토코가 그런 것도 아니고 그럴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어느 순간 키르아를 자신이 속였다는 마음에 처음으로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고 하죠. 그래서 키르아를 결국 마주하게 되었을 때 토코는 처음으로 죄책감이라는 걸 체감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지금까지 늑대들을 죽이는 일에 딱히 마음이 무겁거나 한 적은 없었는데, 또 다른 늑대 키르아를 죽인다는 생각에는 마음이 쉼없이 흔들리고, 해선 안 될 짓을 한 것처럼 두려워지기까지 하죠. 그리고 키르아를 만났을 때 평소와 다른 모습에 키르아가 의아함을 느끼면 토코는 숨기지 못하고 전부 말해버리고 맙니다. 자신이 심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사실 토코는 이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자각 자체가 없어서 키르아에게 미안함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자라왔으니까요. 하지만 키르아를 죽이는 일은 본인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이기에 이렇게 직접 키르아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게 되는 거죠. 그리고 그게 원래 자신이 하던 일이라는 것까지 솔직하게 고합니다. 이상하게 키르아에게는 무언가를 숨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예요. 이 모든 말들이 키르아에게 상처가 된다는 걸 알지는 못하겠지만, 말하는 순간에도 토코는 처음으로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하죠. 자신을 바라보는 키르아를 바로 마주하지도 못할 정도로요. 자신이 처음으로 그른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말이에요.
7. 늑대의 끝
키르아의 경우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어요.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할지를요. 하지만 지금껏 자신이 배워온 것, 자신이 듣고 자라온 것에 억눌려서 마음대로 행하지 못하는 것이죠. 어쩌면 키르아는 토코가 하는 행동을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눈치가 없는 키르아도 아니고, 토코의 악명은 늑대들 사이에서도 이미 드높았을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잠재적인 의심을 지우지는 않았을 거라고 하죠. 허나 동시에 토코가 자신을 죽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마음 또한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토코라는 존재가 보여주는 모습들이 늑대들이 흔히 묘사하던 것과는 너무 달랐고, 자신에게 보여주는 행동들에서도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던 탓이겠죠. 그래서 키르아는 이 순간에 어쩌면 자신이 무리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기도 합니다. 자신을 죽여야하는 심부름을 받은 토코가 쉬이 그 뜻을 이행하지 못하고 자신을 올곧이 바라보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어쩌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행보를 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물론 마음 한편으로는 토코의 대한 자그마한 배신감이나, 회의감이 있을 수는 있지만 자신에게 망설이는 모습을 보며 그 마음이 자라기도 전에 사그라들게 됩니다. 그만큼 키르아가 토코를 통해 꽤 많은 안정감을 받고 있었다는 얘기겠죠. 더불어 토코 또한 이 삶에서 벗어나는 것을 어쩌면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혼자만의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토코 또한 결국 '심부름'이라는 명목으로 어른들에게 놀아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러니 그런 토코와 이 무리를 떠나고 싶어하는 자신 사이에서 차라리 그 누구도 둘을 휘두르지 못하는 다른 세상을 열어나갈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물론 토코에 대한 배신감이나 두려움이 온전히 사라지지 않은 건 아니지만, 키르아는 자신의 이런 선택이 잘못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 결국 토코의 손을 잡습니다. 심부름을 하지 않아도 토코는 토코일 테니, 차라리 모험을 떠나자는 말을 건네면서요.
8. 최종
둘 사이는 '관계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의 카드가 나옵니다. 무엇보다도 감정을 가장 우선시하고 중요시하는 관계로의 시작을 뜻하는 카드가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키르아를 죽이고 싶지는 않은 토코에게 키르아가 손을 내민 순간, 토코 또한 키르아를 향한 다른 마음을 가지게 되고 그런 토코를 용서 아닌 용서로 붙잡은 키르아 또한 새로운 마음으로 토코를 바라보고, 또 세계를 향해 나아가게 되는 것이죠. 그토록 벗어나고 싶던 무리에서 결국 도망칠 수 있게 되었고 동시에 곁에는 제 숨을 유일하게 쉴 수 있게 해준 토코가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키르아치고는 정말 충동적인 행동이지만 그만큼 키르아가 쉼없이 염원하던 일이기도 했습니다. 늑대를 죽이던 인간과 인간을 죽일 수 있는 늑대가 같이 자신들만의 세상을 찾아 떠난다니 누군가 보면 참으로 우스운 일이지만, 토코와 키르아는 둘보다 더 잘 맞는 존재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잘 어울리며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인격적으로 대해줄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다고 하죠. 물론 새로운 세상이자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것들을 마주하는 건 둘 다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자유롭고 정말 온전히 서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어서 그 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행복을 엮어낼 수 있게 된다고 하죠. 토코는 어쩌면 어느 순간까지도 키르아에게 가진 죄책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키르아에게 가지는 애정은 스스로 깨닫게 된다고 해요. 자신이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키르아가 손을 내밀어줬다는 점에서부터 마음이 새롭게 피어났을 테고요. 결론적으로 둘은 새로운 세상에 나아가서 성숙해지고, 서로가 세계인 삶을 살아가게 될 거라고 하네요.